- 교사는 내년 3월부터 현재의 서책형 교과서와 AI 디지털교과서를 함께 수업에 활용해야 한다.
-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에이아이 교과서는 선생님처럼 학생이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고 끌어주는 생성형 에이아이가 아니라 시중에 나와 있는 디지털 학습지처럼 단순 문제 풀이 학습에 불과하다”며 교과서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정부는 AI 교과서의 지위는 교과서로 유지하는 대신, 올해에 한해, 각 학교가 개별적으로 채택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절충안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 AI 디지털 교과서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규정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야당 주도로 통과됐습니다.
-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의 지위를 ‘교육자료’로 하향한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제 24회 대한민국 교육박람회에 방문해 A 사, B 사의 AI 교과서 발표를 들었다.
A 사 AI 교과서는 ebook 교과서를 포함한다. 발표자가 교과서 ebook을 열었다. 페이지를 이동하고 스크롤을 움직이고, 특정 내용을 모니터에 확대해 보여준다. 발표자가 디지털 상호작용의 예시를 보여준다. 동기화 버튼을 누르니 학생의 태블릿 화면이 발표자가 보고 있는 페이지로 이동한다. 발표자가 보고 있는 선생님 화면에서 '주목' 버튼을 누르니 학생 태블릿 화면에 ❗가 나타난다. 귀여운 기능이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선생님이 보는 디지털 교과서에는 '실시간 모니터링' 기능이 있다. 선생님은 실시간 모니터링 기능을 사용해 각 학생이 어느 화면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A 사 AI 교과서 발표자가 '입체도형-전개도' 디지털 수학 교구를 소개한다. 입체 도형 위에서 마우스 스크롤을 위·아래로 움직이니 입체 도형이 전개도로 서서히 바뀌었다가 다시 입체도형으로 바뀌었다. 저런 건 어떻게 만드는 걸까. 신기하네.
B 사 AI 교과서도 디지털 수학 교구를 소개했다. 2차 함수와 x 축이 만드는 공간의 넓이를 구하는 과정을 교구로 보여주었다. 곡면을 여러 개의 사각형으로 분할 한 후 재조립하는 과정이 화면에 펼쳐진다. 고등학교 때 저 우아한 화면을 보았다면 미적분을 이해했을까?
A 사, B 사 모두 디지털 상호작용 예시를 시연한다. 학생이 태블릿에 문제를 풀면 선생님은 그 학생이 문제를 풀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어떻게 풀이 했는지 볼 수 있다. 선생님이 학생의 풀이 과정 위에 💯 을 그리니 학생 태블릿에 선생님이 그린 💯 이 보인다.
B 사 발표자가 AI 교과서를 사용해 조별 과제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학생은 자신의 태블릿에서 자신이 속한 조원이 공유한 자료를 볼 수 있다. 학생 역할을 담당하는 발표자가 조원이 공유한 자료에 ❤️ 를 그린다. 잘만 이용하면 썸 타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겠다.(단, 선생님이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B 사 AI 교과서는 문제 은행 중심이다. 선생님은 AI 교과서가 선택·추천한 문제를 채택할 수 있고 자신이 직접 문제를 만들어 AI 교과서 문제 은행에 추가해 사용할 수 있다. AI 진단평가를 사용해 학생이 현 단원을 학습할 준비가 되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AI 맞춤 평가를 통해 학생의 성취도에 맞는 문제가 출제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발표자는 이 기능들이 시각적으로 임팩트 없다고 판단했는지 시연을 하지 않았다.
A 사, B 사 발표자 둘 다 같은 기능을 보여주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학생의 학업 성취도가 수치로 보인다. 발표자가 'AI 평가' 버튼을 누르자 AI가 학생을 평가하는 친절하고 사려 깊은 글을 써줬다. 발표자는 AI가 작성한 글을 수정해 학생에게 전달한다. 이런 기능은 수업 준비 외에도 많은 업무를 해야 하는 선생님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깔끔하지 않은 뒷맛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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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사, B 사 발표자는 "AI 교과서는 시중에 나와 있는 디지털 학습지처럼 단순 문제 풀이 학습에 불과하다" 와 같은 비판을 너무 의식한 것일까? 시연의 대부분이 눈을 즐겁게 하는 디지털 상호작용 기능에 포커스가 맞춰졌다. 아쉽다. '주목' 버튼을 눌러 학생의 테블릿에 ❗가 나타나게 해 주위를 환기시키면 학생은 선생님의 "주목!"이란 목소리를 들을 기회를 잃어버린다. 학생들은 조별 과제를 할 때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한다. 말로 다투고 눈을 부라리고 얼굴을 붉히고 지우개와 종이를 던진다. 여기에 디지털이 끼어들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존재 하는 상호 작용을 단 몇 가지 방식으로 환원시켜버린다. 아이들은 덜 산만해질 것이다. 더 이상 연필을 부러뜨리지도 않고 책 구석에 낙서를 하지 않을 것이다. 지우개 똥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디지털이 끼어들면 집중하지 않아도 될 것에 집중할 것이고 그래서 집중력을 잃어 버릴 것이다.
AI 교과서가 디지털 상호작용에 신경 쓰면 쓸 수록 교실 안에서 수 많은 형태를 가지는 스킨십의 수가 사라질 것이다. 사라진 스킨십의 수 만큼 사건의 조짐이 감소한다. '입체도형-전개도' 예시를 생각해보자. 디지털 교구가 없다면 학생들은 직접 종이에 전개도를 그리고, 칼로 긋고, 풀칠을 해야 한다. 그 과정 속에서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창의성 넘치는 실수를 마주한다. 사건은 완성 후에도 이어진다. 완성된 입체도형을 볼 뿐 아니라 손으로 만져본다. 실수로 결과물을 구기기도 하고 친구의 결과물을 망치기도 한다. 그러나 디지털 교구로 전개도를 입체도형으로 만드는 과정은 너무 편리하고 쉬워서 실수하기 어렵다. 디지털이 끼어든 세상은 실재 세상과 다르게 지나치게 안전하고 편리한 방식으로 추상화 되어있다. 이 편안한 세계 속에서는 마땅히 익혀야 하는 삶의 기술을 경험하기 어렵다.
AI 교과서 안에서 선생님이 수업을 구성하고 새로운 문제를 만드는 법을 지켜보았다. 계획된 시나리오 안에서 잘 동작했다. 걱정된다. 선생님이 기존의 방법을 구식으로 생각해 AI 교과서가 제공하는 방법으로만 문제를 만들까 염려된다. AI 교과서를 많이 활용하는 선생님이 밝은 선생으로 여겨 질까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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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정 의원이 "AI 교과서는 선생님처럼 학생이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고 끌어주는 생성형 AI가 아니라 시중에 나와 있는 디지털 학습지처럼 단순 문제 풀이 학습에 불과하다"라며 비판했다. 난 고민정 의원의 말에 반대한다. AI 교과서는 학생이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고 끌어주는 생성형 AI가 되어선 안된다. 그 일은 선생님이 해야 한다. AI 교과서는 "문제 풀이 학습" 기능에 집중해야 한다. 시각적 임팩트가 적어 발표자가 외면했던 기술에 AI 기술의 본질이 있다. 진단평가 기능으로 학생이 인수분해를 배우기 위한 준비가 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다. AI 맞춤학습으로 학생의 성취도에 맞고 학생이 흥미를 느낄만한 문제를 출제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학생의 학업 성취도를 빠르게, 잘 평가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한데 그 기술은 허울 좋은 생성형 AI 를 단순히 도입한다 해서 얻을 수 없다.
하지만 기술은 갈수록 빠르게 진보하면서 불가피한 특이점으로, 우리가 아는 인류 역사가 더는 지속되지 못할 티핑 포인트로 나아가고 있는 듯해. 이제 진보는 이해를초월할 만큼 빠르고 복잡해질 걸세. 기술력은 언제나 양면성을 가진 성과이고, 과학은 지극히 중립적이어서 어떤 목적으로든 쓰일 수 있는 통제 수단을 제공할 뿐 모든 사안에 무관심하지. 어떤 특정한 발명품의 비뚤어진 파괴력이 위험을 초래하는 게 아니야. 위험은 원래부터 내재해 있지. 진보를 치유할 방법은 없어. - 벵하민 라바투트 『매니악 = Maniac』
기술은 갈수록 빠르게 진보하면서 불가피한 특이점으로 향해간다. 날 견딜 수 없게 하는 건 특이점을 겪은 뒤 마주할 암울한 미래가 아니라 위 인용을 부끄럽게 만드는, 우리 앞에 놓인 기술의 조악함이다.
최상목이 거부권을 행사해 AI 교과서가 교과서 지위를 유지한다. 허나 미래는 어둡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은 본질과는 거리 먼 AI 교과서 기능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학생이 발휘하는 창의성은 너무 크기에 태블릿으로 가둘 수 없을 것이다. 교육부는 AI 교과서 기업들이 더 많은 기능을 만들려는 과적합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권고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AI 교과서에 대한 논의가 상식의 지평선을 넘긴 2024년 12월 3일의 사건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인내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