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의 시대다. 사람들은 극단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극단을 탐한다. 극단은 왜 위험하며 왜 매혹적인가?

❀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

Dear Lord, let the equations be linear, the noise be Gaussian, and the variables be separable.

주여, 방정식은 선형이 되게 하시고, 노이즈는 가우시안으로, 변수는 분리 가능하게 하소서.


『딥러닝 레볼루션』 테런스 J. 세즈노스키, 한국경제신문사

양서 『틀리지 않는 법』(조던 앨런버그, 열린책들) 의 1장은 "오바마는 왜 미국을 더 스웨덴스럽게 만드려고 애쓰는가? 스웨덴 사람들마저 덜 스웨덴스러워지려고 애쓰는 마당에?" 라는 대니얼 J. 미첼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조던은 대니얼의 말에서 문제점을 찾을 수 있겠냐고 독자에게 묻는다.

대니얼 J. 미첼의 선형 세상

대니얼은 위 그림과 같이 선형으로 세상을 본다. x축은 스웨덴 스러움이고 y축은 모종의 번영 수준이다. 선형 세상에서 y 축이 가장 높은 지점은 직선이 가진 성질에 의해 이쪽이든 저쪽이든 극단의 한쪽 끝이다. 따라서 세상을 선형으로 바라본다면 극단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 극단을 추구하는 사람은 원하는 방향이 다를 지라도 비선형으로 이뤄진 세상을 선형으로 본다는 점에서 같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복지도 있고 지나치게 적은 복지도 있다. 지나치게 많은 규제도 있고 지나치게 적은 규제도 있다. 증거 없는 믿음은 인지 부조화로 끝나고, 모든 믿음에 필요 이상의 증명을 요구하는 태도는 회의주의로 끝난다. 오른쪽의 끝은 파시즘이며 왼쪽의 끝은 이해 조율의 포기와 경제적 파산이라는 논리적 귀결이다. 세상은 아래와 같은 비선형 곡선으로 가득하다.

선형 세상에선 올바른 행동이 오직 방향으로만 결정된다. 비선형 세상에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선택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를 확인해야 한다. x 축 위 현재 위치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난한 과정을 회피하고자 사람들은 비선형 세상을 선형으로 보고, 스르르 극단주의자가 된다.

❀ 극단은 불가능하며, 가능하다 할지라도 추구해선 안된다

세상에는 선형으로 표현 가능한 속성이 있다. 예를 들어 '버그의 수' 를 x 축으로, '프로그램의 품질' 을 y 축으로 지정한다면 선형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프로그램의 품질을 높이고자 버그의 수를 0으로 만들려는 진지한 노력은 결코 이뤄질 수 없고, 가능하다 할지라도 추구해선 안된다. 『틀리지 않는 법』 12장의 예시와 설명을 따라가보자.

사회 보장국 감사관이 월요일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사회 보장국은 사망한 것으로 여겨지는 미국인 1546명에게 3100만 달러의 복지 수당을 부적절하게 지급해 왔다.

설상가상인 점은 그들에 대한 사망 증명 정보를 사회 보장국이 정부 데이터베이스에 제출했으므로, 그들이 이미 죽어서 지급을 중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사회 보장국도 알고 있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Social Security Kept Paying Benefits to 1,546 Deceased Damian Paletta, 월스트리트저널

왜 이런 일이 지속되게 내버려둘까? 답은 간단하다. 낭비를 없애는 데도 비용이 든다. 모든 낭비를 없애는 것은 편익을 상회하는 비용이 따르는 일이다. 3100만 달러는 사회 보장국이 연간 지급하는 총 복지 수당의 0.004%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 보장국은 누가 살았고 누가 죽었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마지막으로 남은 약간의 실수까지 없애기 위해서 좀 더 노력하는 것은 값비싼 대가가 따르는 일이다.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왜 우리는 납세자들의 돈을 낭비하는가?" 가 아니라 "납세자들의 돈을 얼마나 낭비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이다. 정부가 낭비를 전혀 하지 않는다면, 정부는 낭비를 막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극단주의자는 "옳은 건 옳은 거다"고 말한다. 냉장고를 없애야 한다는 칼럼을 썼다가 대중으로 부터 몰매를 맞은 강신주의 자기 변호를 들어보자.

강연을 하면 항상 물어본다. '당신은 그렇게 살 수 있나?' 못 산다고 얘기한다. 매번 ‘버려야 하는데 쓰고 있네’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내가 그렇게 못 살면, 내가 말하는 게 그른 게 되느냐는 것이다. 옳은 건 옳은 거다. 철학자의 역할은 옳은 것들, 반성해 봐야 하는 것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나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나를 욕해도 된다. 그러나 내가 떠들었던 이야기들이 옳다는 걸 부정하진 말아 달라.’ ‘당신은 그렇게 살고 있느냐’고 묻는데 그게 뭐가 중요한가.


'아이돌 철학자' 강신주 "정부나 대기업을 놔두고 왜 나와 싸우려고 하느냐" 강신주, 경향신문

우리가 목표를 달성하도록 도와주는 지식이 의미 있을 터인데, 냉장고를 없애야 한다(자본주의의 완전한 철폐)고 말하면서, 그것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일체 논의를 거부하는 강신주의 발언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강신주와 같은 이들의 발언은 낭만적이라 어떤 종류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들의 낭만적 가치는 큰 기획과 이상과 목표만을 지향하며, 다소 교조주의의 빛을 띄기에 일상 생활 속에서 구체적인 실천적인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아테네 민주정의 기초를 세웠다고 평가받는 솔론에게 "최선의 개혁을 이루었다고 자신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솔론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이 시기의 아테네 시민이 수용하는 범위에서 최선의 개혁을 이루었다고 자신합니다.


『그리스인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살림

❀ 극단은 오만하다

극단은 오만하다. 극단주의자는 자신이 이상을 추구한다는 이유만으로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원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전진한 과거의 열매를 극에 미치지 못했다며 평가절하한다. 다음 글을 보자.

1987년의 우리는 민주주의를 쟁취했고, 2024년의 우리는 그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그 37년 동안 한국 사회는 태극기와 아이돌 응원봉의 거리만큼 달라졌다. 변하지 않은 것은 군부와의 타협으로 만들어진 1987년의 정치체제뿐이다

...

넥타이 맨 중산층 남성 시민이 군부와 타협해 만든 1987년의 정치 질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크게 삐걱거렸다.


87년 체제의 파국…응원봉이 내는 길 조형근, 한겨레

2024년 12월 3일 우둔하고 탐욕스러운 극단주의자로부터 우리를 구한 것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촉발된 87년 개현이었다. 이 사실을 잘 아는 조형근이 87년 체제를 '파국'이라고 폄훼하는 까닭은 87년의 체제가 군부를 완전히 부수지 못하고 타협했기 때문이고, 타협의 결과가 그의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난 그의 이야기에 동의하면서도 그의 오만한 태도에 화가 난다. 이상주의자는 자신의 이상으로 과거를 평가한다. 상황과 한계를 고려하지 않기에 과정을 밟은 이들의 결실을 비웃는다.

오만은 또래보다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사회 초년생들에게서 쉽게 관찰된다. 그들은 적은 표본 위에 성립된 준칙(a.k.a Best Practice)을 모든 것에 적용하려 하며 준칙의 예외를 애써 보지 않으려한다. 오만은 자기과시로 이어지고, 자기과시는 스스로를 주위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키지만 자신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 결과 자기가 받아 마땅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 본인에게도, 조직에도, 사회에도 좋지 않다.

순수를 무기로 타인을 공격해 자신을 증명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기 생각을 타협 불가능한 이상으로 여기고 경험, 신중함, 전문 지식, 합리성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다양성을 싫어하고 자신의 생각에 알수없는 정통성을 부여하며 자신을 도덕적이라고 착각해 타인을 깨우치려한다. 그들은 협력, 타협, 대화를 거부하기에 연대가 아닌 분열을 조장한다.

❀ 극단은 매혹적이다

유체역학은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복잡했다. ⋯ 그런데 이 절망적인 불가능성, 환원 불가능한 계산의 복잡성이 폰 노이만을 매혹했다. 불가해한 문제 앞에서 그는 군침을 흘렸다.

흡사 전 재산을 도박으로 날린 사람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가 잃은 것이라곤 자신이 세상의 논리적 기초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는 유아적 믿음뿐이었다.


『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문학동네

인간의 뇌는 복잡한 개별 사건을 각각 처리할 만큼 뛰어나지 못하다. 우린 복잡한 것 보다 단순한 것에 끌리고 섞인 것 보다 순수에 끌린다. 다양성 보다 일관성과 통일을 선호한다. 혼돈을 거부하고 질서를 경배한다. 인간은 이해를 위해 개별 사건을 일반화·추상화 해 법칙을 만든다. 복잡다단한 현상으로부터 단순한 체계를 추상화 하려 애쓴다.

혼돈에서 질서를 길러 올리려는 열망으로 물리학은 발전했다. 예를 들어, 프롤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관측을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생각해낸 것이 아니다.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가 천동설을 배격하고 그 대신에 지동설을 채택한 이유는 오직 수학 이론이 매우 간결해지기 때문이다. 과학자는 이성을 도구로 사용했지만 그들을 추동한 엔진은 단순함에 대한 종교에 가까운 믿음이었다. 이 믿음과 추상화 능력으로 우린 번영을 이루었다.

극단은 매끄러운 수식처럼 간결해 아름답다. 극단에 취하면 자연과 세상의 본질을 꿰뚫어 본 것 같다. 그 결과 극단으로 세상을 관찰할 뿐 아니라 세상을 자신의 방정식 안에 구겨 넣으려 한다. 하지만 수학이나 물리학과 달리 세상은 여전히 논리의 손길 바깥에서, 경이로운 무질서 속에 존재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룰루 밀러, 곰출판)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 의 업적을 칭송하는 듯 하다가 공으로 도저히 상쇄할 수 없는 죄악을 고발한다. 조던은 자연 생물에서 위계를 가진 질서를 보았다. 조던은 인간을 부적합자적합자로 구분하고 인간 유전자 풀에 적합자의 유전자만 남기도록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그는 도덕과 이성과 진실에 맞서면서 까지 맹렬하게 자연의 질서라는 비전을 단단히 붙잡고 늘어졌다. 조던이 수 많은 반대 증거에도 불구하고 다윈의 발견—다양성이 동질성을 이긴다—을 거부한 까닭은 무질서가 질서인 곳에서도 기어코 질서와 위계를 찾아내고 순수를 추구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순수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에겐 혼돈이 죄악이었다.

❀ 극단은 위험하다

수술 후 깨어난 캐리는 새로운 현실을 맞이했다. 이제 다시는 그녀만의 독특한 눈과 그녀의 고유한 특징들을 물려받은 아이가 이 지구 위를 걸어 다닐 일은 없을 것이라는 현실이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곰출판

공리주의를 창시한 제레미 벤담은 거지를 구빈원에 가둬 사회와 격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지와 마주치면 정이 많은 사람에겐 동정심이란 고통이 생기고, 정이 없는 사람이라면 혐오감이라는 고통을 느낀다. 어떤 경우든 거지와 마주치면 공리가 줄어든다. 거지가 구빈원에 격리되었을 때 사회적 공리의 합이 거지가 거리에 있을 때보다 크기 때문에 거지는 구빈원에 격리되야 한다. 벤담은 자신의 육체를 썩지 않게 만들어 전시하게 함으로써 자기 믿음의 진정성을 과시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이탈리아의 아오스타라는 마을에 몇 차례 다녀오게 되었다. 아오스타는 장애인을 보호하기 위한 안식처 같은 도시였다. 그 안에서 많은 이들이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자녀를 낳았다. 그 결과 비정상이 정상인 곳, 무능력자 취급을 받던 사람들이 번성하는 곳이 되었다.

조던은 그곳을 진정한 공포의 공간으로 묘사했다. 조던은 장기적으로 생물에게 도움을 주면 그 생물은 쇠퇴하게 된다고 믿었다. 자연이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이 오해를 그는 "동물 세계의 극빈자 상태"라고 불렀고, 아오스타에서도 그와 같은 형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믿었다. 자선과 호의가 '부적합자 생존'을 초래하는 일이라며 인류의 쇠퇴를 예방하기 위해 부적합한 사람들의 생식기를 잘라내 "백치들은 모두 자기 핏줄의 마지막 세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조던의 희생자인 캐리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너무 끔찍해 여기에 옮길 수 없다.

벤담도 조던도 자신의 주장이 낳은 잔인함을 보았지만 주저하지 않았다. 극단주의자는 자신의 생각이 야기시키는 잔인함을 자신이 진리에 봉사하고 있다는 증거로 여긴다.

극단주의자는 증거를 초월한 믿음으로 움직인다. 적절히 검증된 이론에 근거해 행동하지 않고 자신을 사로잡은 감정에 취해 행동한다. 대화와 타협을 모르며 강 대 강의 전투를 원한다.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지 않기에 폭력적이고 반 제도적이다. 제도와 절차를 무시하며 제도와 절차를 무시할 수 있는 자신에게 도취 돼 더 큰 죄악에 도전한다.

문제는 극단에 매몰된 사람은 강한 의지가 있기에 주위 사람들을 끌어 당긴다는 사실이다. 우린 살아가며 일이 완료되려면 일의 타당성과 합리성이 아니라 사람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행동의 엔진은 숙고가 아닌 믿음과 의지다. 그래서 우린 의지가 강한 이에게 포섭된다. 극단주의자에 포섭된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지식으로부터 결별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말과 같다.

세력화된 극단이 반대편의 극단을 무대 위로 올린다는 건 더 큰 문제다. 마주한 극단은 서로에게서 최악의 것을 마구 끄집어 내 온 사방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극단주의자는 세상을 분열된 전쟁터로 만들어 대중의 관심을 극대화하고 난장판 속에서 사람들은 방향 감각을 잃어버려 생각을 멈춘다. 다양한 생각들이 피어날 가능성을 차단시켜 세상에 오직 두 개 의견을 허락한다. 극단이 부른 양극화는 재앙이다.

❀ 그러나... 극단은 필요하다

영화 Richard Jewell은 은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당시 폭단가방을 최초로 발견해 큰 참사를 막은 리차드 쥬얼의 이야기를 다룬다. 쥬얼은 영웅이 되었지만 FBI가 쥬얼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 사실이 언론으로부터 알려지자 결백을 호소해야 하는 입장이 되고 만다. 영화는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를 주목해 다루지만 난 쥬얼이란 인물에 더 관심 갔다.

쥬얼은 올림픽 보안 요원으로 일하기 직전에 대학 캠퍼스 경비원으로 일했다. 기숙사에서 술을 마시는 학생을 저지하다 충돌을 빚었다. 쥬얼은 그 일로 칭찬 받기를 기대했으나 돌아온 것은 해고였다.

학장 : "내가 자네에 대한 불만이 이렇게 많은데도 어떻게 자네에 대한 기록을 못봤는지 모르겠군. 학생을 폭행하고. 게다가... 도로에서 학생 차를 세웠어?"

쥬얼: "네.. 그랬어요. 도로에서 미리 음주 측정을 해서 음주 운전자가 캠퍼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 거예요."

학장 : "우린 도로에서의 사법권이 없어."

쥬얼 : "알고 있지만. 법과 질서는 중요하잖아요. 그게 없으면 국가도 없죠.

쥬얼이 말하는 법과 질서는 사회가 합의한 질서가 아니다. 쥬얼은 자신의 법을 세상에 부여한다.

학장 : "해버샴 카운티 치안 담당 사무실에서 해고된 적이 있더군."

쥬얼 : "(학장의 질문에 답하지 않으며)'난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탈선하는 걸 원치 않아'라고 학장님이 개교 기념일에 말씀하셨습니다. 전 중요한 일은 항상 기록해 둡니다. 여기 제가 기록해 둔 것 보이죠? 전 그걸 새겨 들었습니다. 이제 제가 묻겠습니다. 기숙사에서 술 마시는 어떻게 처리하실 건가요? 그냥 봐줄 건가요?"

학장 : "스스로 그만두겠나? 내가 해고하는 게 좋겠나?"

'해버샴 카운티 치안 담당 사무실에서 해고된 사실'을 학장이 지적한 까닭은 쥬얼의 원칙이 세상과 다름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쥬얼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고 학장이 과거에 한 말을 상기시키며 당당히 맞선다. 학장은 쥬얼의 말을 듣고 대화를 멈춘다. 난 학장의 마음을 이해한다. 쥬얼과 같은 사람은 벽과 같아 감당할 수 없다.

자기 원칙을 보편의 옳음으로 만들고 원칙에 대한 성찰 없는 이가 원칙을 내새울 때 주위 사람은 몹시 피곤하다. 게다가 권위 없는 이가 원칙을 내새우니 주위 사람은 쥬얼을 무시하고 비웃었다.

쥬얼은 자신을 잃지 않았다. 행운이었다. 그의 고지식함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폭탄이 든 배낭을 발견하게 했고 많은 생명을 구했다. 만약 쥬얼이 극단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융통성 있고 자신의 원칙보다 주위의 평판에 신경쓰는 사람이었다면 쥬얼은 배낭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배낭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무시했을 것이다. 애틀란타 올림픽 보안팀에 있었던 하나의 극단이 많은 생명을 구했다.

코페르니쿠스는 당시 사람들이 말하는 상식을 거부하고 자신의 믿음이 옳다고 말하는 외골수였다. 아인슈타인은 주위 사람들로 부터 기이하다라는 말을 들었고 교수로 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1 극단은 옳고 그름과 관계 없이 주위 사람을 불쾌하게 한다. 그러나 리쳐드 쥬얼은 생명을 구했다. 기이한 과학자들이 추구한 극단은 인간에게 값진 진보를 허락했다.

어째서 쥬얼과 과학자가 추구한 극단은 재앙이 아닌 축복이 되었을까? 쥬얼의 경우, 쥬얼이 보안팀의 팀장이었다면 좋은 결과를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을 과하게 감시해 그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데 거리낌 없었을 것이다. 쥬얼이 권력으로 부터 소외된 자리에 있었기에 사회에 선이 된 것이다. 과학자의 극단은 제도권의 철저한 검증을 받고 검증을 통과하기 전에는 높은 권위를 부여받지 못한다.

권력을 동반하지 않은 극단은 세상을 다채롭게 만든다. 모든 극단을 제거해선 안되며 권력과 거리가 먼 사람이 행하는 극단적 생각과 행동은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기 때문에 품어야 한다. 조직에는 한 두명의 쥬얼이 있어야 하고 세계에는 괴짜 과학자가 필요하며 한국에는 내가 앞서 비판한 강신주와 조형근의 발언이 때때로 필요하다.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시험은 이러한 인물이 등장하는가가 아니라, 정치 지도자와 정당이 나서서 이러한 인물이 당대 주류가 되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이들에 대한 지지와 연합을 거부하고, 필요하다면 다른 당의 민주주의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경쟁 세력과 적극적으로 연대함으로써 이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가이다.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극단주의자를 정치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성 정당이 두려움과 기회주의, 혹은 판단 착오로 인해 극단주의자와 손을 잡을 때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스티븐 레비츠키, 어크로스

스티븐 레비츠키는 극단주의자와 손을 잡을 때 민주주의는 무너진다고 책에서 여러번 언급한다. 외부의 인기를 얻은 극단주의자를 제도권으로 들이다 못해 대통령으로 만들어버린 우리의 무지함으로 여기 저기 난장판이다. 약자에겐 추상같던 것이 군대를 동원해 주권자를 유린하려 한 자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 그날로부터 100일여가 지난 오늘도 극단을 몰아내지 못함에 무력하다.

우린 극단을 꼭대기에서 몰아낼 수 있을까. 그를 몰아낸 세상은 싸움이 아닌 견제와 균형을. 상호 관용과 이해, 신중함을 잃지 않는 자제를 학습한 세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