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난 1
-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창식 옮김
- 열린책들
사랑과 정의는 지배 계급에 유리하다. 그들의 제국에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교만과 시기 질투보다는 사랑과 관용, 정의가 우선 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배층들이 원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키는 사랑과 정의'이다. 그저 고만고만한 사랑과 정의를 묵상해야 이 땅에서 그럭저럭 칭송 받으며 부와 명예를 지킬 수 있다. 넘치는 사랑은 곤란하다. 사회의 결속에 도움이 되는 사랑만이 칭찬의 대상이 된다. 리코브리시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과한 사랑과 정의를 원하지 않았기에 질서가 견고했다.
포티스 사제가 이끄는 피난민들이 그들에게 나타나자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피난민은 마을 사람에게 더 높은 사랑을 요구했다. 마을 사람들은 반응했으나 행동하기 꺼린다. 마을 사람들은 어느 누가 나서서 맘 속에서 불타는 작은 선한 불꽃을 잠 재워 주기를 빌 뿐이다. 그들은 그레고리 사제의 솔직한 목소리에 기껍다.
이 세상은 네 개의 기둥 위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믿음과 조국과 명예, 다음으로 네 번째 위대한 기둥이 재산이다. 그것에 손대지 마라! 신은 당신의 숨겨진 법에 따라 부를 분배하신다. 신의 정의와 인간의 정의는 별개이다. 신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만들었다. 질서를 방해하는 그에게 화 있으리라. 그는 신의 뜻을 거역하고 있다.! - 그레고리 사제
하지만 탐욕스러운 세상의 질서에 반기를 들며 예수의 사랑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옮긴 사람이 있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뒤엎어 버릴 만한 그 가르침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자신과 투쟁하며 삶의 모순을 지우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 마놀리오스, 베드로 야나코스, 집정관의 아들이라는 명예와 재산을 내팽개친 미켈리스. 그들은 타락한 세상의 질서에 맞서 거룩하게 투쟁한다. 볼세비키라는 누명을 덮어써도, 폭동자란 어이없는 말을 들어도 이 세상에 하늘의 법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승리가 보이지 않는 투쟁을 계속해 간다.
<왜 이곳의 삶 때문에 분투해야 하는가? 이 세상이 나에게 중요하기나 한가? 난 천국에서 유배된 자이니 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고 생각한 적이 많았지. 하지만 알았어. 누구든 지상에서 먼저 승리하지 못한다면 하늘로 갈 수 없고, 열정과 인내로 맞서 싸우지 않으면 지상에서도 승리할 수 없다고. 천국으로 날아가고 싶은 인간에게 도약대는 오직 땅 뿐이다. – 포티스 사제
그러나 혁명은 패했다. 안녕과 배를 채워 줄 부를 원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그들의 목소리는 별 반응을 일으키지 못했다. 오히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못 박았다. 마을 사람들은 못 박힌 이가 또 다른 예수임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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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잔차키스가 택한 결말이 오늘날과 같아 소설로 읽히지 않는다.